인정합니다. 저희가 제시할 수 있는 증거는 모두 정황 증거입니다. 하지만 피고인 한철민의 특수성을 충분히 감안해주시기 바랍니다. 피고인은 서북 부녀자 살해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증거인멸을 위해 살인을 저지른 인물입니다. 피고인의 침착한 얼굴 뒤엔 타인에 대한 강한 지배욕과 용의주도한 살인자의 모습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변호인은 아마도 이런 주장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울증에 빠진 아내가 심한 스트레스를 못 이겨 결국 자신의 몸에 자상을 입히고 살아서 아파트를 걸어 나갔다.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현장엔 감식반의 증언대로 치사량이 넘는 3리터의 피가 남아있었습니다. 그 많은 피를 흘리려면 정확히 동맥을 끊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현장엔 아무런 외부 침입 흔적이 없었습니다. 피고인 한철민 외엔 누구도 현장에 있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정의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모든 정황으로 미뤄볼 때 피고인 한철민이 명백한 범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증거가 정황증거이기 때문에 범인에게 형벌을 가하길 두려워한다면 그건 정의가 아니라 책임 회피일 뿐입니다. 단 한 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과감히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