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혁 이 고지의 주인이 몇 번이나 바꿨을 것 같냐? 아무도 모를 꺼야. 나도 한 30번까지는 셌는데... 그러다보면, 누구라도 똑같은 생각을 했을 거다. 후퇴할 때, 많은 짐들을 꼭 다 가져가야 되나? (탄약상자를 가리키며)그래서, 여기다 묻었어. 양말, 옷가지, 미군한테 꼬불친 쪼꼬렛, 탄약, 담배, 군화...다. 어차피 다시 올라올테니까... 묻어놓고 후퇴했다가, 재탈환했는데... 여기 뭐가 들어있었게? 똥. 다들 흥분해서 제 정신이 아녔어. 그래서 욕이란 욕을 다 써서 편지를 묻었어. 응.. 제 정신이 아니지, 우린 당연히 편지 대신, 수류탄이나, 지연시관 고폭탄을 묻었어야 했어. 항상 그랬듯이, 고지를 빼앗겼다가 다시 찾은 어느 날이었어. 여기에 술이 들어있었어. 그 술은 뇌물이었어. 술이랑 두툼한 봉투 하나가 들어있었는데, 거긴 편지가 여러 장 있었지. 인민군엔 남한에서 징용된 애들도 있고, 또 남에 있다가 월북해서 인민군이 된 애들도 있어. 그런 애들이, 자기 고향으로 편지를 부치고 싶은거지. 그래서, 내가 다 붙여 줬어. 응... 내가... 그 담부터, 우린 화랑담배같은 거 넣어줬고... 걔들은 술, 성냥... 아, 우리가 성냥이 항상 부족하거든. (담배하나를 여유롭게 빼물며)어때? 죽이지?